[뉴스1] 18년째 이어온 온정…교도관들, 살인·묻지마 피해자에 성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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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OVA 댓글 0건 조회 10,167회 작성일 17-08-16 10:02본문
의정부교도소 내 동호회 '한사랑회'의 기부금으로 묻지마 폭행 피해자가 구입한 아들의 필기구 등. © News1 |
(권혜정 기자) 살인으로 가족을 잃은 여성, 끔찍한 성폭행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중국동포, 묻지마 폭행으로 하루 아침에 생계 걱정을 하게 된 피해자에게 쌈짓돈을 털어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이들이 있다. 바로 범죄로 교도소에 수용된 재소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교정기관 공무원들이다.
1999년부터 20년 가까이 독거노인과 장애아 등 지역사회 불우이웃을 위해 작은 돈을 모아 온 이들은 의정부교도소 교도관들이다. 이들은 18년째 '한사랑회'라는 교도소 내 동호회를 통해 온정의 손길을 베풀고 있다. 이들의 손길은 올해 지역사회 불우이웃을 넘어 끔찍한 범죄로 피해를 입은 범죄 피해자들에까지 이어졌다.
의정부교도소 소속 교정공무원 등 50여명이 참여하고 있는 한사랑회는 100% 자발적으로 운영된다. 이들은 한 달에 1만원씩을 모아 연탄 등 각종 생필품을 구입해 지역사회 독거노인에게 전달하고 장애아 등에게 치료비 등을 지원해왔다. 회원수는 매달 바뀌기도 한다. 김주수 한사랑회 회장(교위)은 "18년째 40~50여명 사이의 회원수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누군가 강요해서 하는 봉사가 아니기 때문에 긴 세월 동호회를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랜 시간 이어 온 봉사활동이지만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웃지 못할 특명 때문에 한사랑회의 선행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러나 지금까지 어림잡아 한사랑회로 인해 도움을 받은 이들은 50여명이 넘는다. 금액 역시 1억원에 가깝다.
주로 지역사회 불우이웃에게 도움을 주던 이들이 최근 범죄 피해자에게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전국 교도소 중 교도관들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으고 이를 범죄 피해자에게 지원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20년 가까이 한결같이 지역사회 불우이웃을 위해 사용하던 성금을 갑작스럽게 범죄 피해자에게 사용한다는 점에서 약간의 걱정이 앞서기도 했지만 회원들은 '만장일치'로 지원에 찬성했다.
'찬성표'를 던진 김길용 한사랑회 총무(교사)는 "정부에서도 기초수급생활자 등에게 지원을 해주고 있지만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며 "이번 지원 대상자들이 바로 경계선에 있는 이들이었고 이들에게는 한사랑회 등 민간시스템이 도움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범죄를 접했을 때 단순히 누가 가해자인지 등 범죄 행위에만 초점을 맞췄는데, 이번에 사례를 접하면서 범죄로 인한 피해 내막을 알게 되었고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지원을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한사랑회로 인해 도움을 받게 된 A씨는 묻지마 폭행 피해자다. A씨는 지난 5월 서울 구로구의 한 술집 앞을 지나다가 술에 취한 남성이 던진 유리 맥주잔에 맞아 손목 인대가 끊어지는 등 전치 6주의 부상을 당했다. 식당에서 아르바이트 등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던 A씨는 당장 생활비 걱정과 초등학교 6학년 아들 걱정에 막막했고, 이 사연을 접한 한사랑회는 A씨에게 50만원을 전달했다.
또 다른 대상자는 폭행과 성폭행, 감금, 납치 피해여성 B씨다. 그는 지난 2014년 지인 소개로 만난 남성과 교제하다가 이별을 통보했다. 남성은 B씨를 지인과 함께 경기도의 한 모텔로 납치해 3일간 감금하며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집단 성폭행을 했다. 이로 인해 뇌출혈과 온몸에 타박상 등을 입고 한쪽 다리마저 절게 된 B씨는 생계비는 커녕 병원비조차 감당할 수 없었고 결국 전세 보증금으로 치료를 받게 됐다. 일정한 주거지 없이 여기저기를 떠돌며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B씨의 사연에 한사랑회는 매달 10만원씩 1년간 지원을 결정했다.
이밖에도 한사랑회는 의붓아버지의 살인범죄로 한 순간에 어머니를 잃은 C씨에게도 매달 5만원씩 1년간 지원을 약속했다.
교소도 출소자들의 재개를 돕는 '소망의 집'을 방문해 쌀을 기증한 한사랑회. © News1 |
크지 않은 금액을 지원하면서 여기저기 알리는 것이 부끄럽다는 김길용 한사랑회 총무는 "우리가 교도소에서 만나는 재소자들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지원을 한다는 점에서 연결점이 있고, 교정공무원으로서도 그들을 지원한다는 것 자체에 상당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의정부교도소에서 성폭력사범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는 김 총무는 이번 지원으로 자신 역시 얻은 점이 많다고 했다. 그는 "성폭력 사범들에게 교육을 하며 피해자들이 입게 되는 심리적, 신체적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 하게 되는데, 이번 지원을 통해 범죄 피해자들이 부수적으로 부딪치는 생계비와 병원비 문제 등 현실적인 고민에 대해 좀 더 알게 됐다"며 "이를 통해 성폭력사범을 교육할 때 피해자에 대한 공감 등을 좀 더 구체적으로 강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한사랑회는 앞으로도 범죄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지원을 꾸준히 이어갈 방침이다.
한사랑회로부터 도움을 받게된 A씨는 "어찌나 미안한지, 정말 교도소에 당장가서 봉사라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묻지마 범죄로 인해 부상 당한 손목 치료비는 하루하루 늘어만 가는데, 어린 아들은 집에서 울고만 있으니 막막했다"며 "이런 나를 도와준 교도관들에게 너무나 감사하다"고 연신 감사 인사를 전했다.
A씨는 한사랑회가 지원한 50만원 중 단 한 푼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아 우선 초등학생인 아들을 위해 학습지와 필기구 등을 구입했다. 또 자신이 집을 비운 사이 아들이 쉽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도록 그동안 꿈만 꿔왔던 전자레인지도 구입했다. 그는 "아들 소원이 필기구와 일기장, 영어책, 전자레인지 등을 갖는 것이었는데 한사랑회 덕분에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됐다"며 "다친 손이 괜찮아지면 수박 한 통이라도 사들고 가 꼭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사랑회와 범죄 피해자들을 연결해 준 안민숙 한국피해자지원협회(KOVA, 코바) 상담국장은 "우리나라 형량이 대체적으로 낮기 때문에 피해를 당한 사람들도 범죄를 쉽게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 피해자의 범죄율은 생각보다 높다"며 "묻지마 폭행을 당한 사람들의 경우 '나도 폭행을 저지르고 벌금 내면 그만 아니냐'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범죄 피해자를 돕는 이러한 손길이 향후 범죄를 막을 수 있는 하나의 장치가 될 수 있다"며 "이같은 작은 움직임이 '악순화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인데, 특히 교정기관에 있는 사람들의 도움은 그 효과가 훨씬 더 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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