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범죄 피해자 돕는 기금 1133억, 직접 지원된 건 고작 283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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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28회 작성일 23-04-04 00:00본문
[잊혀진 헌법 30조, 홀로 남은 범죄 피해자]
①벌이부터 붕괴된 삶
범죄자 벌금에서 8% 떼어 조성
그마저도 작년부터 200억 줄어
대부분 ‘민간 위탁’ 지원센터도
열악한 예산·인력난에 허덕여
영·미, 과태료·이익 몰수금 포함 보상금 지급 상한도 크게 높아
“타인의 범죄 행위로 인하여 생명, 신체에 대한 피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로부터 구조를 받을 수 있다.”
헌법 제30조는 이렇게 적고 있다. 범죄 피해 구조가 시민의 기본권 중 하나라는 의미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이 기본권 보장에 소홀하다. 범죄자들의 벌금에서 일부 떼어낸 기금으로 범죄 피해자들을 지원하는데, 직접 지원비는 전체 기금의 25%밖에 되지 않는다. 민간에 위탁해서 운영하는 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만성적 예산·인력 부족에 시달린다.
경찰청 범죄 통계를 보면, 2021년 기준 범죄 피해자는 142만9826명이다. 이 가운데 살인, 강도, 강간, 강제 추행, 방화 등 강력범죄와 폭행, 체포·감금 등 폭력범죄 피해자는 25만5137명이다. 국가는 이들을 지원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치안을 맡아 범죄를 예방해야 하는데, 그 책무를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범죄 피해자 지원은 범죄자들의 벌금에서 8%를 떼어내 조성한 기금으로 충당한다. 영국이나 미국은 벌금 외에 과태료와 범죄로 인한 이익 몰수금까지 재원에 포함하지만, 한국은 이 항목들이 재원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기금 규모가 크지 않다.
26일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법무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 범죄 피해자 보호기금 예산은 1133억4700만원이다. 이 가운데 기금운영비 등을 제외한 주요 사업비는 826억7300만원이다. 주요 사업비 중 범죄피해자지원센터,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 등 기관 운영 비용에 해당하는 간접 지원비가 543억400만원이나 된다. 범죄 피해자와 가족에게 지급되는 치료비, 생계비, 구조금 등 직접 지원비는 283억6900만원뿐이다. 전체 범죄 피해자 보호기금 가운데 피해자 직접 지원비가 25%에 불과한 것이다. 심지어 지난해부터 주요 사업비 규모마저 이전보다 200억원가량 줄었다. 주요 사업비는 법무부, 경찰청,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등에 배분되는데, 복지부가 담당하던 아동학대 관련 사업이 재원 부족 문제로 지난해 1월부터 기금 예산에서 빠졌다.
피해자에게 직접 지급되는 지원금은 얼마나 될까. 우선 범죄 피해자에게는 최대 월 50만원의 생계비가 최장 3개월간 지급된다. 여기에 범죄로 사망하거나 장해 혹은 중상해와 같이 치명적인 피해를 본 경우, 피해자나 유족에게 지급되는 구조금이 있다. 2021년 기준 유족 구조금 상한액은 1억4900만원, 장해·중상해 구조금 상한액은 1억2400만원이었다. 지난해 지급된 구조금은 모두 95억293만원이었고, 대상이 된 사건은 189건이었다. 평균적으로 유족(138건)은 6092만원, 신체에 영구적 손상을 입은 장해 피해자(23건)는 3574만원, 중상해 피해자(28건)는 981만원 정도 받았다. 강력범죄 피해자 다수가 범죄를 당한 뒤 신체적·정신적 치료나 트라우마 때문에 직장 생활을 이어가지 못하는 처지라는 점을 고려하면, 치료와 회복, 생활을 병행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국외와 견주면 문제는 더 뚜렷해진다. 영국은 범죄 피해자에게 “매년 2억~4억파운드(약 3200억~6400억원)에 이르는 보상금을 지급”(황태정, ‘영국의 범죄피해자구조제도’, 2015년)한다. 보상금 지급 상한액은 50만파운드(약 8억원)나 된다. 미국은 2020년 기준 범죄 피해자에게 모두 3억6167만달러(약 4700억원)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연방 정부 보상금만 이 정도이기 때문에 주 정부 지원금까지 포함하면 규모는 더 커진다. 특히 미국은 한국과 달리 범죄 피해자 보호기금에서 기관 운영비 등 간접 지원비를 5% 이내로만 쓰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만큼 피해자에게 직접 지원하는 기금의 비율이 높다.
범죄 피해자 지원 시스템도 미비점투성이다. 피해자 지원은 대부분 정부 위탁을 받은 비영리 민간단체인 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맡는다. 국고와 지방 보조금, 후원금을 받아 운영하는 센터는 전국에 60개 사무실을 두고 있는데, 센터당 인력은 평균 2.5명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센터 산하에서 피해자 트라우마를 통합 지원하는 기관인 스마일센터는 전국에 16곳뿐이다. 범죄 피해자들에게 접근성이 떨어지지만, 예산이 부족해 센터 수를 늘리지 못하고 있다. 임예윤 서울서부범죄피해자지원센터 사무처장은 “지원 사업뿐만 아니라 인력을 확충할 수 있는 운영비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민간단체 사정도 열악하다. 자체 사업 수입과 회비, 후원금 등으로 운영하는 ㈔한국피해자지원협회(KOVA)는 피해 상담 등 많은 업무를 자원봉사 체제로 운영한다. 협회의 송유주 상담사는 “후원금을 아껴놨다가 연말에 조금이라도 나눠줄 수 있도록 하다 보니 지부들이 사무실을 유지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한국피해자학회 회장을 지낸 오경식 강릉원주대학교 교수(법학)는 “사적 복수를 금지하면서 국가기관이 형벌권을 독점하게 됐으니, 범죄 발생에 대한 책임도 국가에 있다고 봐야 한다”며 “범죄 피해에 대한 국가의 책임성을 더 높이고 예산 투입 등을 더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출처 : 한겨레원문 : 범죄 피해자 돕는 기금 1133억, 직접 지원된 건 고작 283억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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