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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 범죄자와 맞서 싸우면 '범죄'?…당신의 판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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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OVA 댓글 0건 조회 5,132회 작성일 15-04-22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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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와 맞서 싸우면 '범죄'?…당신의 판결은?
 
 
[더팩트|황신섭·김아름 기자] 하나만 묻자.
 
당신 집에 침입한 도둑에게 위협을 느껴 맞서 싸웠다면 정당방위일까?
 
만약 성폭행을 피하려고 성범죄자의 혀를 깨문다면?
 
최근 법원이 집에 침입한 도둑을 때려 뇌사 상태에 빠트린 한 남성에게 실형을 선고하면서 정당방위 범위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도둑 때렸는데 '감옥행?' '지나친 폭력 정당방위 아냐'
 
지난 3월 8일 오전 3시 15분께 강원도 원주시 남원로 A(21)씨 집에 도둑이 들었다.
 
입대를 앞두고 친구들과 어울리다 새벽에 돌아온 A씨는 2층 거실 서랍장을 뒤지던 B(55)씨를 발견했다.
 
A씨는 곧장 주먹을 휘둘러 B씨를 쓰러뜨리고 걷어찼다. 놀란 B씨가 달아나려 하자 A씨는 빨래 건조대로 등을 몇 차례 내리쳤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B씨가 머리를 크게 다쳐 식물인간이 됐다.
 
검찰은 'A씨가 흉기도 없이 달아나던 B씨를 심하게 폭행했다'며 기소했고 1심 법원 역시 'A씨의 방어가 도를 넘었다'며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A씨는 도둑을 제압하려던 정당방위라며 곧바로 항소했다.
 
현재 이 사건은 춘천지법 항소심 재판부로 넘어간 상태다. 검찰이 27일 이례적으로 이 사건과 관련한 해명 자료까지 냈으나 논란은 식지 않고 있다.

현직 법조인들은 이 사건의 법원 판단이 옳다고 설명한다.
 
박종운 대한변호사협회 변호사는 "모든 정황을 살펴봤을 때 법원 판결이 맞다. 저항 능력(폭행으로 바닥에 쓰러진 상태)이 없는 도둑을 계속 때렸기 때문에 과잉방위로 봐야 한다"며 "과거 판례도 이런 경우 모두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차미경 한국여성변호사회 변호사(사무처장)도 "국민 상식에는 어긋나지만 법 이치상 과잉방위가 맞다"면서 "바닥에 쓰러진 사람을 폭행한 것은 그의 인권을 무시한 태도다"고 설명했다.
 
정당방위를 인정하는 법원 판결도 제 각각이다. 성폭행을 피하려고 성범죄자의 혀를 깨문 여성 사건과 관련해 1.2심 법원과 대법원 판결이 다른 사례가 많았다.
 

◆성추행범 혀 절단 사건에 법원 판결 '제각각'
 
1980년대 후반 경북의 한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사건은 1990년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30대 주부가 늦은 밤 골목길에서 두 청년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이 과정에서 이 주부는 한 남성의 혀를 깨물었다.
 
이 때문에 이 남성의 혀가 잘려 나갔다.
 
당시 검찰은 그녀의 행위가 과잉방위라며 징역 1년을 구형했고, 1심 재판부 역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와 대법원 생각은 달랐다.
 
두 법원은 "피해자의 행위가 자신의 성적 순결 및 신체에 대한 부당한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다'며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앞서 1965년 성추행범의 혀를 깨문 여성은 비슷한 상황인데도 끝내 유죄 판결을 받았다.
 
2006년 6월 경기도 안산에서는 자신을 성추행하려던 남성(44)을 차에 매달고 달리다 숨지게 만든 여성(38)이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고법은 이 여성에게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해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법원 판결은 그때 그때 달랐다.
 

◆미국은 기소 불가능한 '캐슬 독트린', 중국은 '무한방위권' 인정
 
우리나라는 정당방위의 범위가 애매하다.
 
형법은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정당방위를 인정하는데 '상당성' 개념이 지나치게 일반적이고 추상적이어서 해석하기에 따라 허용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미국엔 '캐슬 독트린(Castle Docrtine)'이 있다. 집 주인이 생명에 위험을 느끼면 집에 들어온 침입자를 총으로 쏴 죽여도 기소(재판 청구)할 수 없다는 법이다.
 
코네티컷과 일리노이, 노스캐롤라이 등 16개 주가 이 법을 적용하고 있다. 나머지 주 역시 위협을 느낄 경우 맞서 싸워도 책임을 묻지 않는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Stand Your Ground)'법을 시행하고 있다.
 
중국은 '무한방위권'을 적용한다.
 
중국 형법 제20조 3항을 보면 '생명이나 신체 위험에 맞서 방어를 할 경우, 과잉방위에 속하지 않고 형사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정당방위의 범위를 확대 해석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유독 피해자 방어권에는 인색하고 가해자 권리만 따지는 경향이 짙다"며 "법 해석이 옳다하더라도 국민 법 감정과 상식이 이를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치사회팀 tf.psteam@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