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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삶의 향기-봉사와 의구심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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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피해자협회 댓글 0건 조회 7,588회 작성일 12-02-07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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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 교수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중앙일보 2011.03.08] 자린고비 정신이 투철한 집안에서 성장한 연유로 매년 내는 적십자회비도 어떻게 해서든 면할 수 없을지 고민하게 된다. 주말마다 대형마트에서 장 볼 때도 역시 가격표의 십자리 수까지 일일이 확인하게 되는 건 거의 본능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남들이 통 큰 기부행위를 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단순한 감동을 넘어서 한편으로 의구심도 든다. 그러나 ‘왜’란 의문은 사실 내 입장에서의 궁금증일 뿐 그들에게는 딱히 답변해야 하는 질문이 되지 않는다. 남을 돕는 행위에는 구체적인 이유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사성어에 세답족백(洗踏足白)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상전의 빨래를 발로 밟아 주다 보면 종의 발뒤꿈치가 희게 된다’는 의미다. 즉 애초 자기에게 특별히 이득이 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으나 남을 위해 성심껏 일하다 보면 자신도 성장함을 의미한다. 아마도 타인을 위한 봉사란 이렇게 조그만 희생으로 얻을 수 있었던 값진 경험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심리학 서적들은 이타성에 대한 정의를 ‘충성심이나 의무감과는 다른 것으로, 타인의 복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선행’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진화론에서는 이타성 역시도 사실은 이기적인 집단행위에서 출발한다고 해석한다. 다윈은 일개미가 보이는 자기희생, 즉 이타성은 종의 번식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다른 각도에서 보면 자기 집단만을 위한 이기적 행위임을 지적했다.
어쨌든 조만간 100% 자기자본을 기부해 범죄피해자를 돕겠다고 나선 민간단체가 출범한다. 애초 범죄예방위원으로 봉사하던 사람들 중 일부로 구성된 이 단체는 범죄피해자를 대상으로 여러 가지 활동을 펼치겠다고 계획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닥친 범죄피해라는 개인적 불행 앞에서 넋이 나간 우리의 평범한 이웃들이 다시금 제자리를 찾게 해주기 위해 봉사의 손길을 보태겠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의 봉사행위가 별다른 일상이 되지 않는 선진국에서는 민간봉사자들로만 구성된 피해지원단체가 많이 존재한다. 가진 자들의 멋진 나눔을 허심탄회하게 칭찬해 주는 그들의 사회적 분위기는 민간인들의 성숙한 헌신에 어떤 의구심도 품지 않는다.
그러나 삶이 고달팠던 우리의 경우 의심의 눈초리가 있을 수 있다. 과연 이들의 배후에는 정치적 목적이 존재하지 않을까. 진정 봉사활동만을 하는 것인가. 필자 역시 애초 이들의 선의를 반신반의했었다. 하지만 같은 공기를 숨 쉬는 우리 중에도 진정 나눔의 기쁨을 아는, 가진 자들이 존재할 수 있음을 한편으로는 믿고도 싶었다. 꼭 금전만이 아니더라도 재능봉사라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며, 재능이 꼭 없더라도 범죄로 어지러워진 삶의 터전을 깨끗이 치워 주는 일도 그들을 위해서는 절실할 것이다. 범죄피해란 아무리 선량하게 살아왔더라도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불행이며 자신의 책임과는 무관한 결과다. 따라서 우리 중 누군가에 의해 발생한 문제를 우리 중 누군가가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순수 민간단체로 출범하는 (사)한국피해자지원협회의 활발한 봉사활동을 기대해 본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