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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월스트리트저널] 미국 살인사건들의 진실: 흑인 피살률이 높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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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OVA 댓글 0건 조회 4,628회 작성일 15-04-22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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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살인사건들의 진실: 흑인 피살률이 높은 이유는?
 
 
미국 도시에서 흑인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에서는 너무 많은 살인자들이 너무 오랫동안 너무 많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을 교묘히 피하면서 끔찍한 살인이 전염병처럼 번졌다. 흑인 공동체에서 이런 살인과 심각한 폭력 범죄를 해결하는 것은 법집행기관의 최우선 목표가 되어야 한다. 또한 이것이 퍼거슨, 스테튼 아일랜드 등 흑인 지역에서의 과도한 경찰력 사용과 인종 프로파일링 등 좀더 널리 논의된 문제보다도 우선돼야 한다.
 
살인과 폭행을 저지르고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은 미국 형사사법제도의 전반적 실패이며 흑인에게만 국한되는 역사적 불공평이다. 이는 흑인차별정책이 있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수준 이하의 치안 유지 활동이 남긴 유산이다. 역설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최근 시위대가 괴롭힘, 차별이라고 비난한 경찰 작전들은 사실 이런 지역에서 취약한 경찰력을 과도하게 보충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경찰 전술들은 ‘예방이 전부이고 강력한 대응은 때늦은 행동’이라는 법집행 모델의 일부다. 경찰관들은 진짜 해를 가하는 이들을 추적하는 것보다 사람들을 무작위로 검문하는 것에 더 능하고, 중대한 범죄를 수사하는 것보다 일제 검거를 하는 것에 능하다.
 
이런 오랜 패턴의 결과, 안타깝게도 흑인들 사이에서 살인이 퍼지게 됐다. 흑인들 사이의 살인율은 최근 감소 추세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2010년에는 10만 명당 32명을 기록하면서 1990년 수치의 절반을 기록했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그룹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2010년 25~34세 흑인 남성의 살인사망률은 같은 연령대의 백인 남성보다 약 15배 높았다.
 
이런 인종간 격차는 놀랍지 않다.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의 역사학자 에릭 H. 몬코넨은 19세기 후반까지의 흑인 살인율을 추적했으며 그 불균형이 20세기에 더 커지고 있음을 밝혔다. 로스앤젤레스 경찰의 연간 보고를 1940년대 초반부터 살펴보면 흑인이 인구의 5%밖에 차지하지 않았던 때에도 살인 피해자의 21%를 흑인이 차지했다.
 
흑인이 다른 흑인에게 살해당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쉽다. 인종을 불문하고 살인은 대체로 집단 내에서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살인율이 높은 곳이라면 어디서든 치정 싸움, 복수, 밀고, 소문 같은 것이 수많은 폭력을 초래한다. 외부인들에게는 그 다툼이 사소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순식간에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목격자들은 증언하기를 두려워하고 집단의 ‘정의’는 법의 바깥에서 응징의 형태로 폭발한다.
 
다시 말해 한 공동체 내에서 법의 타당성이 불안정해지면, 즉, 정의가 타락하고 권력이 의심받고 당국이 폭력에 의한 부상과 사망을 무시하면, 살인율이 치솟는다. 고립과 분리가 그 효과를 확대시킨다.
 
경찰국가로서 오랫동안 낮은 살인율을 기록했던 현대 이집트를 생각해 보자. 2011년 아랍의 봄 혁명이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직후 무법 상태가 됐고 사적 심판을 자행하는 무리들이 가로등에 시체를 걸어놓곤 했다. 점령당한 주민들, 변경 지방의 주민들, 가난한 도시민들 사이에서도 살인율이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국가로서 범인을 신속하게 체포하고 사적 징벌에 의문을 던지게 만들 만큼 철저하고 전문적인 수사를 능숙히 해낸 적이 없다. 역사학자 몬코넨이 알아낸 바에 따르면 1800년대 뉴욕에서는 전체 살인 사건 중 10분의 1만이 유죄판결로 끝났다. 그런 와중에도 흑인차별정책이 있던 남부는 특히나 제기능을 하지 못했다. 남북전쟁 후의 재건 시대가 끝나고 권력을 가진 백인들은 흑인 노동자들이 헌법에 따른 정당한 법 절차에 접근할 수 없도록 막는 동시에 연방 당국의 개입을 피하기 위해 사법 절차가 인종 차별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눈에 띄게 차별적이진 않지만 법 바깥에 상당한 폭력의 여지를 남겨두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폭력 범죄에 대한 기소가 취약하거나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부 백인들은 법적 결과를 두려워할 필요없이 흑인들을 공격할 수 있었고, 흑인들도 종종 서로를 죽이고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는 차별 정책 중에서도 가장 비뚤어진 술수 중 하나다. 흑인들은 법의 적용이 아니라 법 적용의 부재 때문에 억압받았다.
 
이후 수십년간 남부 흑인들은 법은 엉터리라는 생각과 스스로 원한을 갚는 성향을 지닌 채 북부 산업도시들로 이주했다. 이들이 만난 것은 야경봉을 잽싸게 휘두르고 초조하게 총을 들고 다니는 세기 중반 무렵의 경찰들이었다. 범죄율에 따라 배치되는 이 경찰들은 흑인 지역을 가득 채웠다. 이로 인한 충돌이 1960년대 폭동에 불을 붙이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미국은 이런 도시 폭력을 억제하는 대신 손을 놓았다. 하버드 로스쿨의 윌리엄 J. 스턴츠와 여러 학자들이 밝혔듯 미국 범죄당 형기가 1960년대와 70년대에 최저를 기록하면서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관대한 국가 중 하나가 됐다. 개혁가들은 피고의 권리에 집중하면서도 법집행 부족이 초래한 피해는 깨닫지 못했다.
 
1980년대에 강력한 반발이 일면서 지금의 대량 감금과 장기 형량의 시대가 왔다. 하지만 해결되지 않은 살인 사건이 여전히 흑인 지역에 쌓여 있다. 유죄 선고를 받은 이들이 감옥에서 나이를 먹고 있지만 형사들은 여전히 엄청난 수의 거리 폭력에 압도당했다.
공식 발표되는 살인사건 해결 비율은 잘해봤자 경찰의 유효성을 대강 보여주는 수치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전과 기록에 따르면 살인죄로 입소한 사람의 수는 1960년대 살인사건 수의 절반에 미치지 못했고 1970년대에는 3분의 1 수준이었다. 흑인들이 끔찍한 비율로 살해되고 있을 때 사법체계는 그 무력함을 입증했다.
 
일부 연구에서는 백인의 살인사건이 해결될 확률이 더 높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하지만 공개 데이터가 부족하고 해결이 쉬운 가정 내 살인사건이 주로 백인 지역에서 일어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비교가 어렵다. 한편 도시의 흑인 지역에서 죽음에 이르는 폭력 사태를 부추기는 집단 폭력은 대부분의 백인 교외 지역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경찰의 사건 해결 비율이 인종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는 것은 결정적 요인이 아니다. 오히려 도시 내에서 분리된 흑인 구역에 살인이 집중됐다는 사실이 이 지역에서 처벌이 집행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확대시킨다. 1988년부터 2002년까지 LA 경찰청 남부지국의 미결 살인사건 수는 평방마일당 41건이었다. 같은 기간 수많은 백인 지역들에서는 살인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흑인 지역들 중 일부는 블록당 해결되지 않은 사건이 3건씩 있었다. 특히나 폭력적인 사우스 산페드로와 이스트 84번가 교차로는 7건이다.
 
한편 경찰은 과거에 그랬듯 소란 행위와 비행에 집중했다. 비용이 덜 들고 잡기 쉬운 범죄다. 1956년 LA 경찰이 ‘만취’와 시 규정 위반을 이유로 체포한 사람은 20만 명이 넘는다. LA 인구의 10분의 1에 가까운 수다. 사소한 무질서로 인해 범죄가 지역 전체로 퍼진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이 이 오래된 체포 전략에 반영돼 있다.
 
그 결과, 불신만 커졌다. 폭력 범죄가 처벌받지 않는데 비폭력 범죄가 단속된다면 많은 이들은 국가가 정의가 아닌 통제를 원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경찰도 얻을 것이 없다. 헌신적인 경찰들은 심각한 범죄자들을 쫓기를 바랄 것이다. 그렇게 하도록 놔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