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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간 아버지가 몹쓸짓…이젠 좀 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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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피해자협회 댓글 0건 조회 8,412회 작성일 12-08-17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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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 성폭력 피해 수기 낸 여성
초등 6학년 때 중절수술까지
말하면 죽여버린다 협박당해
탈출했다 잡히면 가혹한 매질
“창피해할 이는 가해자 자신
피해자 숨지 말고 도움받길”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친족 성폭력 피해자가 낸 수기가 발간됐다. 15일 서점에 배포된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어느 성폭력 생존자의 빛나는 치유 일기>(이매진)다. 지은이 은수연(가명)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9년 동안 목사인 아버지로부터 가정폭력을 동반한 성폭력(강간, 강제추행 등)을 겪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낙태수술도 감당해야 했다. 대학교 1학년 때 여관에 끌려갔다가, 몰래 주인에게 ‘납치됐다’며 구조 요청을 한 뒤 가까스로 경찰서로 도망쳤다. 경찰의 적절한 조처 덕에 아버지는 구속돼 7년간 복역한 뒤 출소했다. 마침 그때 친족 성폭력에 대해선 친고죄를 폐지한 ‘성폭력 특별법’이 시행돼, 두려움에 떠는 피해자의 고소 없이도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었던 것이다.
 
10년 동안 피를 토하듯 조금씩 써 내려간 글을 세상에 내보낸 지은이를 15일 서울지하철 2호선 역 인근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성실한 30대 직장인으로서 일에 대한 열정을 얘기하는 그의 눈은 빛났고, 목소리엔 힘이 실려 있었다.
책을 낸 동기에 대해 그는 “내가 겪은 일은 이 사회에 없는 일이 아니고, 나만 겪은 일도 아니며 널리 존재하는 고통”이라며 “내가 입을 닫고 죽으면 드러나지 않겠지만, 그렇게 묻어두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다 토해내니 시원하다”며 웃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 그는 9년 동안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릴 수 없었다. 아버지가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죽여버릴 거야”라고 협박했기 때문이다. 은씨는 책에서 “나는 좀 말해야겠다”고 여러번 썼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하면서 내 잘못이 아니라 아버지의 잘못인 걸 알게 되고 홀가분해졌어요. 책에서 ‘아버지에게 수치심종합선물세트를 드린다’고 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어린 시절 학교를 마치고 나오면 아버지가 교문 앞에서 기다리곤 했다. 딸이 달아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은씨는 책에서 “나는 그저 그 사람이 나라는 존재, 그러니까 마음대로 가지고 놀고, 괴롭힐 나라는 존재를 가지러 온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렇게 점점 물건이 돼가고 있었다”고 썼다. 탈출을 해 잡혀올 때마다 가혹한 매질과 성폭력이 이어졌다.
 
엄마는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아버지의 폭력 탓에 겁에 질려 그를 돕지 못했다. 은씨는 가족에 대해 객관적으로 이해를 하려고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30살 때 돌아가신 엄마와는 그 직전에 화해했다.
“왜 아빠를 말리지 못했냐고 물었더니 ‘나도 죽을 것 같았다’고 하시더군요. 화해를 하고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가려 했는데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셨죠. 엄마도 여자로서 불쌍해요.”
남동생은 “남자들이 읽도록, 좋은 책이 되도록 잘 써보라”고 지지해줬다. 은씨는 “부모 복은 없지만 인복이 있는 편”이라며 웃었다. 국내외 친구들 또한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줘 곧 출판기념 파티도 열 예정이다.
그동안 그는 10년 넘게 여성단체 등에서 성폭력 피해자 지원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치유에도 힘썼다. 집단상담, 치유글쓰기, 사이코드라마 워크숍 등에 부지런히 참가했다. “특히 영화 <도가니>를 보면서 수백만 관객들이 성폭력을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고, 일반인들의 공감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돼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물론 두려움도 있다. 오해나 편견 탓에 비난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친족 성폭력 피해를 당한 기간이 길다고 해서 피해 생존자들이 그 삶을 허용하거나 즐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한다”며 “이 책은 한 여자아이가 겪었던 ‘폭력’에 관한 얘기이지 ‘성’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창피해할 이들은 가해자 자신들입니다. 아버지에게 끌려가며 시내 한복판에서 저의 피해 사실을 말하며 도와달라고 했지만 누구도 손 내밀지 않았어요. 제 외침은 ‘커밍 아웃’이 아닌 ‘스피크 아웃’입니다. 세상에 크게 외치는 거죠. 목숨 걸고 사막을 건너 신세계를 만난 사람의 이야기처럼 저도 죽다 살아난 것 같습니다. 쓰지 않으면, 신세계가 온전히 열릴 것 같지 않았어요.”
 
그는 “피해자들도 이제는 문제에서 뛰어나와 당신의 문제를 도와줄 빛나는 친구들을 만나보라고 말해주고 싶다”며 “피해자를 넘어 생존자가 되어 당신의 눈물도 빛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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