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남일보] 노숙자 살인 누명 벗긴 3인의 국선변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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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OVA 댓글 0건 조회 4,603회 작성일 15-04-22 16:59본문
노숙자 살인 누명 벗긴 3인의 국선변호인
김준채ㆍ김용채ㆍ박흥수 변호사 헌신적인 변론으로 무죄 확정
2015. 03.22(일) 19:01
10년 전 잡초가 우거진 순천시 한 빈집 마당에서 시신이 발견됐다. 단서는 주변에 놓여 있던 구부러진 동파이프, 부서진 우산, 깨진 소주병, 피 묻은 화장지뿐.
목격자는 없었다.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그로부터 7년 후 범인이 잡혔다. 현장에서 나온 지문과 혈흔은 노숙자 김모(54)씨의 것이었다. 경찰은 증거를 들이밀며 김씨를 추궁했고, 그는 순순히 범행을 자백했다.
하지만 검찰 조사에서 김씨가 갑자기 말을 바꿨다. "겁이 나서 피해자를 때렸다고 상상하며 진술했다", "폐가에서 피해자와 술을 나눠 마신 적은 있지만 죽이지는 않았다".
검찰은 이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대신 김씨가 돈 문제로 피해자와 싸우다 소주병으로 머리를 내리치고 우산과 파이프로 온몸을 때려 살해했다는 내용의 공소장을 법원에 접수시켰다.
국선변호사로 1심 변호를 맡은 김준채(44ㆍ사법연수원 41기) 변호사는 김씨를 처음 접견했을 때 "부인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김씨를 만날수록 살인범이 아니라는 심증이 생겼다.
자세히 보니 증거가 허술했다. 김씨 지문이 찍힌 소주병은 플라스틱 페트병이었다. 더구나 왼손 엄지가 잘린 김씨는 주로 오른손을 쓰는데 소주병에 찍힌 지문은 왼손 지문이었다.
구부러진 파이프에는 피해자 머리카락과 피가 묻어 있었지만 김씨 지문은 묻어 있지 않았다.
김 변호사는 이 같은 허점을 지적하는 한편, 김씨의 20년 전 지인을 어렵게 법정에 세웠다. 그는 김씨가 본디 온순한 사람이라고 증언하고 피고인석에 앉은 김씨를 일으켜 안아줬다.
1심은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김 변호사는 "김씨가 초짜 변호사를 만나서 고생하는 것 아닐까 두려웠다. 나로 인해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아 다행이다"고 회상했다.
검찰은 2심에서 회심의 반격에 나섰다. 과거 김씨와 감방을 같이 쓴 재소자들을줄줄이 증인석에 세운 것이다. 이들은 김씨가 범행에 대해 털어놓는 걸 들었다고 증언했다. 김씨는 궁지에 몰렸다.
국선으로 2심에서 변호한 김용채(65ㆍ13기) 변호사는 "동료 변호사들이 이거 유죄로 뒤집어지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 난감한 심정으로 반대 심문에 애썼다"고 전했다.
하지만 2심 역시 무죄였다. 일부 재소자들이 김씨를 두둔한 덕분에 오히려 도움이 됐다. 한 때 상해치사로 공소장을 변경하는 방안이 검토됐으나 공소시효(7년)가 지난 뒤였다.
최근 대법원은 이 사건을 김씨의 무죄 확정으로 마무리 지었다. 김씨가 빈집을 떠난 후 다른 사람이 찾아와 피해자를 살해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원심 내용을 판결문에 언급했다.
3심을 국선변호한 박흥수(42ㆍ32기) 변호사는 "김씨가 자포자기 심정으로 범행을 자백한 것 같다. 그 자백을 뒤집어 무죄를 확정받기까지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재판 단계뿐 아니라 수사 단계에서도 국선 변호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며 "김씨가 피의자 신문 때부터 변호인 조력을 받았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씨를 도운 세 변호사들은 서로 공을 돌리며 쑥스러워했다. 현재 대법원과 각급 법원에서는 229명의 국선전담변호사와 재판부 전속 비전담 국선변호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김훈 기자 macculli@hanmail.net